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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캠페인] 무슬림 아버지 둔 12세 아이 “성경 공부가 제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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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육언송 작성일19-03-13 11:57 조회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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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우간다 마유게 아동개발센터를 가다곽재욱 동막교회 목사(가운데)와 최남오 기대봉사단(왼쪽), 박재범 기아대책 서울네트워크부문 총괄 부문장이 마유게 기리기리 CDP센터에서 결연 대상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기아대책 제공

나일강의 원류 중 한 곳이자 세계 제2의 담수호인 빅토리아 호수를 품고 있는 아프리카 우간다.

곽재욱 서울 동막교회 목사는 지난달 14일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차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마유게 지역을 찾았다. 이곳엔 국제구호개발기구 기아대책의 ‘기대봉사단’ 최남오(56) 조은자(51) 선교사 부부가 2016년부터 지역 아이들을 위한 떡과 복음 사역을 펼치고 있는 CDP(아동개발사업)센터가 있다.

최 선교사 부부가 기아대책과 함께 펼치는 CDP는 교육, 성경적 영성, 보건, 정서개발, 지역개발을 축으로 미개발 지역의 자립을 돕는 사업이다. 최 선교사는 이곳으로 오기 전 이미 한 차례 지역사회의 자립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2008년 처음으로 사업을 진행했던 소로티 지역은 7년 만인 2015년 자립에 성공했다. 14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가축을 키우는 마을 자립 사업도 정착됐다. 무엇보다 CDP를 통해 후원을 받고 자란 아이 중 3명은 수의사가 돼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마유게 지역은 소로티 지역보다 여건이 훨씬 더 어렵다. 종교적으로 보면 무슬림 비율이 60% 이상이다. 마을 이장과 관리직 공무원 대부분이 무슬림이어서 복음 전파가 쉽지 않다.

CDP센터가 위치한 기리기리 마을의 경우 약 5000명의 주민들이 살지만 극빈층이 대부분이다. 커피와 사탕수수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하루 3끼를 챙겨 먹기도 쉽지 않은 가정들이 많다. 가난 때문에 아이들은 가정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다.

센터에서는 부모의 동의를 받아 460여명의 아이들을 직접 돌본다. 이 중 기아대책을 통해 아동결연 형식으로 후원받는 아이들은 300명 정도다. 약 300명의 후원금으로 46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함께 점심을 해결하고 교육을 받는 것이다.

최 선교사의 목표는 기리기리 마을에서 도움이 필요한 500가정마다 한 아이씩 후원하는 것이다. 그는 “부모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먹이고 교육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전략적으로 부모들에게 청소 및 배식, 센터 관리 등을 맡기며 참여를 유도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복음이 스며든다. CDP 결연 아동 중 250여명도 센터에서 격주마다 진행되는 ‘토요모임 프로그램’을 통해 성경 공부, 게임 등을 하며 영성과 정서개발을 받고 있다.

곽 목사는 지난달 16일 프로그램을 참관한 뒤 그중 몇 아이의 가정을 최 선교사 부부와 함께 찾았다. 첫 번째로 방문한 가정의 샤미루(7)는 1년 전 아버지를 여윈 뒤 3살짜리 쌍둥이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30)와 함께 살고 있었다. 여동생 중 한 명은 발달장애를 앓고 있어 쌍둥이 언니보다 눈에 띄게 왜소해 보였다. 심장에도 이상이 있지만, 가난 탓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영어를 좋아하는 샤미루는 “하루빨리 비행기 조종사가 돼 동생도 치료하고 어머니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조종사를 꿈꾸게 된 건 엔테베 공항 근처에 사는 친척 집에 갔다가 비행기를 본 뒤부터다. 최 선교사는 “그만큼 아이들에게는 경험과 견문을 넓힐 기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찾은 가정은 CDP를 통해 후원 결연을 한 지 2년 정도 된 와이스와(12)의 집이었다. 센터 책임자인 조은자 기대봉사단이 틈틈이 점검하며 표본으로 삼고 있는 가정이었다. 성경 공부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 와이스와에게는 아픔이 있다. 친부는 가정폭력을 휘둘렀고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이혼한 뒤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와이스와의 새 아버지는 무슬림이었다. 재혼하면서 데려온 자신의 아이는 기독교 색채가 있는 센터에 보내는 걸 막았지만 와이스와는 내버려뒀다. 곽 목사는 “새 아버지가 그런 문제로 아이들을 차별할 정도면 다른 건 어떻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곽재욱 목사(왼쪽)가 와이스와군(두번째)의 가족에게 매트리스를 선물하고 있다.

와이스와는 굴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성적이 상위권에 속한다. 그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다. 그는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어머니가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주일이었던 이튿날 아침 와이스와는 어머니와 함께 예배에 참석했다. 그는 간증 시간에 “우리 가족에겐 희망이 없었지만, 센터의 도움으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예배에 참석하겠다”고 선포했다.

어린 손녀가 있는 곽 목사는 이들 아이의 현실에 가슴 아파했다. 곽 목사는 “이곳 아이들을 보면서 한국에 있는 어린 손녀 생각이 많이 났다”면서 “하나님께 이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속으로 막 외치면서 물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CDP 사역이 아이들에게 단순히 떡을 주는,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일일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도움의 손길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것”이라며 “사랑을 받고 자라면 그들 중에서 다음세대의 지도자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곽 목사는 “떡과 복음을 갖고 그들을 기독교적 삶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기아대책의 사역에 많은 공감을 한다”며 “더불어 교회를 짓고 아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일도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 선교사도 “교육과 자립 지원, 복음을 통해 이곳 주민들이 하나님의 평화와 영적인 회복을 꿈꾸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최종적으로는 이곳 우간다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형상이 회복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마유게(우간다)=글 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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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층 압력으로 방송 못해 낙향, 카바레 문 열자 문전성시… 2년여 뒤 출연섭외 ‘해제’ 직감남진 장로(가운데)가 1990년대 목포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했다. 군사정권 때 방송 출연 제재를 받았던 남 장로에게 가족은 큰 힘이 됐다.

미국에 있다 1982년 말 귀국했더니 동양방송(TBC)이 사라지고 없었다. 전두환정권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80년 11월 KBS에 합병됐다고 했다. TBC에 친한 PD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KBS로 이직했다. 거대한 방송국도 없애버릴 정도로 정권의 입김이 셌으니 일개 가수의 방송 출연을 막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방송 출연을 제재하는 이유를 수소문하다 방송국 관계자로부터 “위에서 조금 제재를 하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누군가 권력층에서 손을 쓴 게 틀림이 없었다.

“외로운 사람끼리 아! 만나서 그렇게 또 정이 들고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

우연히도 1982년 만들어진 ‘빈잔’ 가사가 그때 내 상황과 잘 들어맞았다. 그 가사처럼 외롭게 느껴졌다. 큰 기대를 품고 귀국했지만 방송 출연을 제재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KBS에 출연하지 못하면 연예계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KBS에 못 나온다고 MBC에 나오면 된다거나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가수는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직접 관리했다. 음주운전이나 도박 등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출연을 금지하곤 했다. 대부분 비공식적 조치였는데 이게 더 무서웠다. 공식적으로 제재를 당하면 이유라도 알지만, 비공식적으로 알음알음 조치가 취해지면 이유도 모르고 당하기 때문이다. 정권도 명분이 없으니 비공식적으로 조치를 했지 싶다. 레코드업계에도 극심한 불황이 찾아왔다. 매니저는 방송국 출입이 금지됐고 가요방송 횟수 제한의 조처가 내려졌다.

팬들에게는 “쉬고 싶어서 목포로 간다”고 말했다. 권력층에게 출연 제재를 당했다고 얘기할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돌아와 활동을 재개한 지 얼마 안 됐기에 모양새도 이상했다. 얘기한다고 바뀔 것도 아니었기에 잠자코 있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84년 목포에 극장식 카바레 클럽 ‘하와이관광’을 개업했다. 2년 정도 운영했는데 한창 인기가 있을 때 낙향해 유흥업을 하니 문전성시를 이뤘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왔다. 음악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주말에 내가 운영하는 업소에 가끔 가서 한두 시간 노래를 부르는 게 전부였다.

내 히트곡 중 유일하게 방송 활동 없이 인기를 얻은 게 ‘빈잔’이다. 방송에 못 나가니 사람들의 구전으로만 불리다 90년대에 와서야 히트했다. 방송이나 광고 한 번 안 하고 성공한 노래이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노래다. 박자가 느린 노래는 오랜 시간이 지나 뜨는 경우가 있다. 천천히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는 것이다.

빈잔은 박춘석이 작곡하고 조운파가 작사한 노래다. 조운파와는 처음으로 같이 작업한 작품이다. 조운파와 친하지도 않았는데 희한하게 내 마음에 잘 맞는 가사가 나왔다. 먼 미국에서 외로웠던 마음이 조운파에게 전해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목포에 내려가 외로워하던 내 마음도 이 노래가 달래줬다. ‘노래 시인’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조운파의 멋진 작사가 빛난 노래다.

목포에 내려간 뒤 2년쯤 지났을 때였다. 광주의 한 운동장에서 KBS가 주관하는 행사가 열리니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광주에서 행사를 열려면 목포에 머물던 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섭외를 하기 위해 PD가 직접 집까지 찾아왔는데도 참석하지 않았다. 출연 제재로 기분이 퍽 상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연 제재가 풀렸다는 신호임은 직감했다.

정리=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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